‘높은 벽’ 실감한 야구 대표팀, MLB 규정에 적응해야 산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일본 원정 평가전 첫 경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WBC를 앞두고 MLB 환경을 미리 체감하기 위해 떠난 원정이었지만, 선수들은 낯선 규정과 판정 기준 앞에서 흔들리며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맞대결은 단순한 평가전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만큼, 대표팀이 짚어야 할 과제가 더욱 선명해졌다.

KBO리그는 최근 몇 년간 공정성·정확성 중심의 제도 개선을 가장 빠르게 추진해온 리그 중 하나다. 특히 2024년부터는 세계 최초로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의 ‘전면 적용’을 실시했다. 모든 투구를 기계가 판정하는 시스템으로, 기계적 오류 이슈는 일부 있었지만 전반적인 일관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현장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여기에 올 시즌 중반엔 체크스윙 비디오판독도 추가되면서 심판 판정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반면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MLB는 전통적인 심판 문화를 고수하는 보수적 리그다. 오랜 논의 끝에 내년 시즌부터서야 팀당 2회 챌린지 방식의 부분적 ABS를 도입할 예정이고, 비디오판독 역시 적용 범위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 당연히 MLB 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WBC 역시 ‘기계 판정의 시대’에 적응한 KBO 선수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번 평가전을 WBC 사전 적응훈련 차원에서 MLB 규정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선수 보호를 위해 연장전은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이 낯선 환경에서 어린 선수들이 예상보다 크게 흔들렸다는 점이다. 15일 도쿄돔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에 4-11로 완패하며 일본전 10연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이어갔다. 실력 차이와는 별개로, 가장 뼈아팠던 장면은 ‘적응 실패’가 경기 전체를 무너뜨린 순간들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5회초 선두타자 문현빈의 타구였다. 투수의 발을 맞고 크게 튀어 오른 타구를 MLB 주심은 플라이 아웃으로 선언했다. KBO 기준이라면 즉시 비디오판독으로 정정될 장면이었지만, MLB에서는 내야 수비가 처리한 타구의 포구 여부는 판독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판정 번복은 불가능했다. 이 오심은 즉각적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혔고, 이후 타선은 무기력한 범타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투수진의 스트라이크존 적응력 부족은 경기 내내 이어졌다. 이날 등판한 7명의 투수 중 6명이 사사구를 남발하며 총 11개의 볼넷·사구를 허용했다. 존을 타이트하게 잡는 MLB 심판 특성에 익숙지 않은 KBO 투수들은 투구 템포와 밸런스를 잃었고, 이는 추가 실점으로 직결됐다. 지난 체코전에서 완벽한 투구를 펼쳤던 이민석은 8회 선두타자 상대 첫 투구를 던지기도 전에 피치 클록 위반을 범해 ‘자동 볼카운트 1B’를 내주는 장면까지 나왔다. 결국 그는 연속 출루를 허용하며 이닝을 스스로 어렵게 만들었다.

류지현 감독은 평가전 이전부터 “이번 원정은 선수들에게 또 하나의 기회”라고 강조해왔다. 실제로 평가전에서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WBC 최종 엔트리에 합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다만 그 기준은 명확해졌다. 바로 ‘사람 심판 체제’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다. MLB식 판정은 때로는 납득하기 어렵고, 경기 흐름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그러나 WBC가 MLB 규정 아래 운영되는 이상, 심판 판정은 경기의 일부이며 선수들은 결국 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

류 감독은 경기 후 “사사구 11개가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며 “어린 선수들이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KBO ABS는 높은 존 꼭짓점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비슷한 공이 전부 볼로 선언되는 느낌이었다”며 “영상과 판정 흐름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평가전은 패배로 시작됐지만, 얻은 교훈은 작지 않다. MLB 환경에 대한 조기 적응,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멘탈 관리가야말로 내년 WBC에서 한국 야구가 반등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